- 그의 여행자의 詩
석모도의 저녁 - 이재무
Chris Yoon
2021. 11. 14. 04:42
석모도의 저녁 이재무
비오는 날의 바다는
밴댕이회 한 접시, 도토리묵 한 사발을 내놓고
자꾸만 내게 술을 권했다
몸보다 마음이 얼큰해져서
보문사 법당에 오르며
생에 무늬를 남긴 인연들을 떠올렸다
비를 품고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저녁 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비오는 날의 바다가 쓰는
생의 주름진 문장들을 읽는 동안
마음의 자루가 터져담고 온 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다
얼마나 더 큰 죄를 낳아야
세상에 지고도 너그러워 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섬에 와서도 내내 뭍을 울고 있는 내가 싫었다
* 이 시는 강화도에서 가까운 석모도 여행의 체험을 담고 있다.
화려한 수사를 통해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고 있는 화자의 회한에 찬 정서가 돋보인다.
화자는 석모도 여행 중에 일단 먼저 '비 오는 날의 바다'부터 만난다.
바다는 밴댕이회 한 접시등 안주를 내놓고 그에게 술을 권하는데,
그는 몸보다 마음이 얼큰해져 '자신의 생'에 무늬를 남긴 인연들을 떠올린다.
또한 비를 품고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자신의 저녁 길을 생각한다.
저녁 길은 바다가 쓰는 생의 주름진 문장들에 닿거니와,
이들 문장들을 읽으며 그는 얼마나 더 큰 죄를 낳아야 세상에 지고도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자기 반성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