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골목에 시간을 잊은 음악 한 줄기
네 얼굴은 불빛 아래 하재연
불빛이 타는 거리를 지나 세 사람의 광장을 지나
벌과 꿀의 언덕을 넘으면
푸른 잿빛 거리 지나 초록 기찻길을 지나 붉은 강물의 길로 들어서면
여름 봄 겨울이 가고
깨어진 노란 머리 여자애들이 유리병을 창문 밖으로 던지며 깔깔거리고
나는 온통 젖어 불빛에 타고 가을이 지나가고
내가 가진 모든 동전들이 없어지고
회전목마의 말들이 뚜벅뚜벅 꿈속으로 들어서듯이 네 얼굴은 불빛 아래 돌고
가로등 아래 트럼펫을 부는 사내 까만 점을 빛내며 웃고
가끔 너는 행복하다 말하고 가끔 너는 슬프다 말하고
네 얼굴은 불빛 아래 아무도 몰라보게 허옇게 분칠을 하고
혁명의 거리를 지나 하나뿐인 길을 건너 삐걱거리는 침대의 보도를 밟으면
발자국은 반복되는 마지막 소절 주제를 잊고 느리게 흘러가는 기이한 간주
네 손가락에 차갑게 얼어있는 네 손마디에 기록되지 않는
귀청을 뚫고 지나가는 나는 싸구려 선술집의 주크박스에서
삼만년째 돌고 있는 차가운 맥주거품처럼 꺼져가는 너의 목소리는
네 머릿속에서만 흘러나오고
너의 목소리는 지상의 만분의 일초도 흉내 내지 못하고
북극에서 차를 몰고 달려온 사내의 병 속에서
투명하고 아름다운 알약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흩어지고 죽음 같은 음도 고요한 칼날도 지각하지 못하는
네 손가락이 만지는 허공에
벌써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성급한 백화점과 호텔 로비에는 Christ Mas Tree 장식이 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한 장 남은 카렌다가 썰렁하다.
히말라야에서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서 근 한 달을 치료하고 나온 후,
아직도 출타를 못하고 가까운 동네만 서성댈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급할수록 쉬어 가랬던가!
오히려 지나온 한 해를 차분하게 뒤돌아보며 지인들과 전화통화도 나누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고 들어앉아 있다.
11월. 뭔가 떠나가는 달, 그리고 떠나보내야 하는 달이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