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古宮산책

景福宮의 午後 II

Chris Yoon 2021. 11. 12. 06:46

 

시대와 도시는 바뀌었지만조선의 제왕들이 거닐었을 그 뜰에 서면

고개를 맞대인 용마루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린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세자와 끝내 감싸주지않고 母子의 정을 끊은 帝王.

어느 궁궐뜰에선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할아버지의 용포를 붙들고 울부짓는 어린 왕자가 있고

강화도에서 붙들려와 영문도 모르고 왕이 되어 시름시름 앓던 강화도령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인왕산 치마바위에 폎쳐진 내쫓긴 아내의 치마를 애절하게 바라보며 애타게 눈물짓는 王도 계시다

500년의 哀史를 내 어이 다 알리야마는 많은 기억을 안고 바라보는 나의 애수어린 회상은 눈물겹다

 

 

 

구중궁궐 사이로 어두운 하늘이 보인다
오랜 뼈아픈 역사를 지닌 경복궁에서
누가 나처럼 고개들어 용마루 한번 제대로 올려다 보았을까
조선왕조 오백년에 서린 어둠을 나는 전생처럼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때 나는 무엇이었나?


용마루 : 지붕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수평 ‘마루’를 말함.

궁궐을 다니다 보면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을 볼 수 있다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은 임금이나 왕비의 침전(寢殿)이었다.
경복궁 강녕전 또한 국왕의 침전이었는데 용마루가 없다
그러다 보니
'王은 용(龍)이다. 龍이 자는데 다른 龍이 위에서 누르면 되겠는가?
그래서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후세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최근의 학설이있다.
건축사(建築史)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경주대 문화재학과 이강근 교수의 학설에 따르면.
용(龍)을 또 다른 용(龍)이 누를 수 없어 용마루가 만들어 지지않았다는 말은
그야말로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야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이는 조선 말기에 청(靑)나라 건축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용마루가 없으니 꼭대기 부분이 각이 지지 않고, 둥글게 넘어가게 되고
그 곡면을 덮은 기와를 곡와(曲瓦) 또는 궁와(弓瓦)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청나라에서 멋을 내려고 발전시킨 양식이다.
그리고 건축기법상 용마루 없이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지붕 중심선에서 아래로 벋은 것이 서까래
그 서까래를 밑에서 받쳐 주는 것이 도리,
도리와 도리를 횡으로 받치는 것이 보 라고한다.
보 중 맨 밑 중심 되는 것이 대들보 다.
그런데 다른 부분 ‘도리’ 는 한 개씩이나, 희정각 지붕 바로 밑 ‘도리’는 쌍으로 되어있다.
곧 용마루가 없으면 이음매가 곡선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으니 지붕 밑 도리가 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희정당 (熙政堂)은 용마루가 있다.
구조는 용마루 없이도 되게끔 되어 있는데 왜 용마루가 있을까?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나 전각들 대부분이 화재를 당했다.
그러자 일제(日帝)는 경복궁 전각들을 뜯어다 옮겨 지어 버렸다.
1920년 경복궁의 국왕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을 뜯어다 만든 것이 현재의 희정각이다. 경복궁 강녕전일 때는 용마루가 없었으나, 창덕궁으로 옮겨 오면서 용마루를 올려 버린 것이다.
참고로 창덕궁 침전(寢殿) 대조전(大造殿)은 경복궁 교태전을 뜯어 온 것이다.
지금 경복궁 강녕전과 교태전은 최근 복원한 것이다.
강녕전은 국왕의 침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대원군 때 지은 것은 위 설명대로 1920년 창덕궁으로 뜯어가 버렸고 지금 건물은 복원한 것이다.
용마루가 왜 없는지 내막을 알고나면 무척 허망하다.
임금이 용인데 또 다른 용이 누를 수 없어 그랬다는 설은 그나마 인간적이다.
차라리 용(龍)을 또 다른 용(龍)이 누를 수 없어 용마루가 만들어 지지않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믿는편이 마음이 편했을 것을.



 

구중궁궐의 문들이 활짝 열렸다

묵은 공기가 밖으로 나오며 흡사 유령처럼 웃으며 날아간다

캐캐묵었던 어두운 영혼들이다

오백년을 갇혀서 지내다가 이제야 날아간다

안녕! 나도 고개숙여 인사한다

 

 

 

햇살고운날, 궁궐뜰에서 창호지를 바른
창살이 고운 문을 열어보면
어처구니 얹힌 기와지붕너머 또 다른 지붕,
그리고 그 너머 펼쳐진 또다른 지붕들...
그렇게 일평생을 궁궐에서 지내며
밖을 그리워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그대, 보이는가?
저 멀리 보이는 가난한 자유가.
그대 들리는가?
저 멀리 손짓하며 부르는 유년의 기억들이.

 

 

 

조심 조심 방안을 드려다본다
누구의 방이었을까?...
조심스럽게 카메라의 셧터를 눌러본다

 

 

 

아늑히 바로보면
여인네의 조각보만큼이나 색이 곱고 옛스럽다
방 건너, 대청마루
대청마루를 건너면 또 방,
이렇게 공간은 이어지고 있다
그 공간을 조심스럽게 건너 다니며 생활하던
조선의 王들
그리고 궁인들의 얼굴, 하나,... 하나,...
가슴에 서린다

 

 

 

뒷편에 긴 통로가 있었다
이곳으로 나와서 생각시들은 제조상궁에게 엄한 벌을 받았고
눈물을 찔금거리며 고향의 형제들을 생각하고
끼리끼리 모여 어울려 놀며 밀담(密談)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내시들 또한 가슴에 쌓이는 연정을 풀길이 없어
은밀한 사랑을 남성끼리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그 恨,... 풀길이 없어
말없이 긴 통로를 걸었겠구나

 

 

 

 

그 어떤 것도 무엇 하나도 소유 할 수는 없나봐
평생을 걸어도 전부를 걸어도 텅 빈 가슴 뿐이니
세월을 따라 살다가 보면 그리움 끝에 닿을까
이 세상이 아닌 인연이었기에 비켜갔을 뿐인 걸...

이 궁궐을 거쳐가며 왕과 함께 권력을 쥐기를 소원했던 그 많은 사람들.
그 어떤 것도 무엇 하나도 소유하지 못 한채로 이 곳을 다 떠나가고
궁궐의 주인이었던 왕족 마저도 역사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그 빈 공간, 모두 떠나간 빈 공간을 보며 앉았다.

시공을 초월한 그 세월로 돌아가모든 사람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모두에게 손 흔들고 웃음지으며 인사하고 싶다"

Hi~' I'm happy to meet you

-Photo / Copy :: Chris Nicolas

 

 

 

 

 

이영훈 곡 / 景福宮의 午後

작곡가 이영훈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광화문 연가>를 작곡한
우리노래의 서정적 감성을 잘 그려냈던 비운의 뮤지션입니다
정동길목에는 그의 노래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