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晩秋 Series 6 - 가을 공원에서

Chris Yoon 2021. 11. 12. 04:25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문득 나는 한 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도심의 가을공원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저녁에 지는 잎들은 얼마나 가벼운지
한 장의 몸으로 땅 위에 눕고

술병을 들고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 술에 짙어져 갈 때
그 옆에 앉아
상처 난 세상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다른 이름으로 나, 오래 살았던가
여기에 없는 나를 그리워하며
지금 나는 땅에 떨어진 잎들을 오지 않아도 좋았을
운명의 손금처럼 들여다보는데

몰랐네
저기 공원 뒤편의 수도원에는
침묵만 남은 그림자가 지고
저기 공원 뒤편 병원에는
물기 없는 울음이 수술대에 놓여 있는 것을

몰랐네
이 시간에 문득 해가 차가워지고 그의 발만 뜨거워
지상에 이렇게 지독한 붉은빛이 내리는 것을

수도원 너머 병원 너머에 서서
눈물을 훔치다가 떠나버린 기차표를 찢는
외로운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나는 몰라서
차가운 해는 뜨거운 발을 굴리고
지상에 내려놓은 붉은 먼지가 내 유목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술 취해 잠든 늙은 남자를 남기고
나는 가을공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허수경 -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운명을 탕진한 사내의 모습에서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당신’을 떠올린다.
외로운 사람. 저녁놀이 서녘으로 사라져가듯 여운을 이어 놓은 ‘차가운 해는 뜨거운 발을 굴리고’도 새롭다.
‘뜨거운 발’은 그야말로 저녁놀의 붉은 기운이겠지만, 늙은 남자의 한때의 청춘일 수도 있고 우리의 추억일수도 있겠다 싶다.
- 윤성택

 

 

 

저녁해가 넘어가는데 바람이 분다

가로수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날아간다

이제 곧 겨울, 마음 둘 곳 없는 공허가 밀려온다

집을 나선다.

 

 

 

저 붉은빛 잎들, 한때 하얀 꽃송이들로 눈부시었고 여름날엔 푸른잎으로 무장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절정에서 떨어지려한다

요즘 T.V.광고에 바람에 물결치는 붉게물든 가을나무를 부감으로 촬영하고

그 아래 S자동차가 한 대있는, 그러면서 가슴을 울리는 고전음악이 울려 퍼지며

車밖으로 나와서 자연속에서 음악을 들어보라는,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고 눈으로, 귀로, 나 혼자 느낄 수 있는 광고가 눈에 띈다

 

 

 

나는 좀 더 늦게 태어났어야했다

내가 광고를 할때, 저런 컨셉이 광고주에게 먹히지를 않았었다

오로지 숨 가쁘게 상품의 성능만을 전하려고 멘트로 가득한 테스티모니얼이 범람했었다

다시한번 광고를 한다면 바쁘게 돌아가는 미디어속에 쉬어갈 수 있는 C.F를 만들고 싶다

 

 

 

위례성길에 한때 장엄하게 노란잎을 자랑하던 은행나무들이 잎을 떨군다

석양이 지는 거리로 걸어가는 행인들 마치 한 편의 불란서영화를 보는듯하다

춥다. 그러나 저 걸어오는 여성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가방을 든 여자... 왕년에 크라우디아 카르디나레가 나왔던 영화였다

저 여성, 가방을 든 여자는 흘깃 나를 보고는 내 곁을 스쳐서 지나갔다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리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리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리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의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리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리라

< 이제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 -

정호승시인의 詩이다

그중에서 '~사랑하라'를 '~사랑하리라'로 내가 고쳐서 써보았다

그러나 저런 여자라면 인생경험을 많이도 한 소위 山戰水戰 다 겪은 여자가 아닐런가?

내가 미쳤나?... 나는 이제 누구를 사랑한다면 이마와 귓가에 솜털이 채 다 안벗겨진 풋과일같은 여자를 사랑하고싶다

 

 

 

사랑, 좋~지

우리는 매마른 세상에 사랑이 있어 그나마 살아간다

그 대상이 누구던간에 저마다 가슴에는 사랑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은행나무 아래 두 연인이 소근댄다

이 가을에 나는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제 노란 은행나무 밑에서 속삭이던 연인들이

오늘은 마로니에 나무아래서 속삭인다

사랑도 장소를 바꿔야 한다

상대를 바꾸기보다 장소를 바꿔 신선한 충격을 받기를 권한다

섹스도 그렇다.

매일 같은 침대에서보다 수시로 장소를 바꿔보라

도발적으로 욕실이나 주방도 좋고 T.V.를 보면서 소파에서도 좋다

무료해지면 인근의 모텔로 나들이를 나가도 좋을것이다

이 가을이 가기전에... 겨울이 오기전에...

 

 

 

수컷들은 화려하다

요즘 길거리에서 사내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화려한 색감의 스키니 진을 입은 사내아이들이 온갖 구애의 행동으로 여자들을 유혹한다

마치 장끼같다

장끼는 이른봄부터 화려하게 몸단장을하고 큰 소리로 까투리를 자신의 영역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우월한 자신의 유전자를 불어넣고 종족번식을 했다

이제 장끼가 터를 잡고 정사를 나누던 자리에도 감이 익어 매달렸다

이 겨울이 오면 장끼는 어디로 가야하나...

그리고 나는?...



글 / 사진 :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