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인연(因緣)...
아침에 눈을뜨며 새삼스럽게 화두(話頭)로 떠오르는 단어라서 사전을 찾아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라고 되어있다
[불교]에서는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relation 2) affinity 3) cause and occasion라고 풀이되어 있다
어느 여류작가는 '인연은 한번 밖에 오지않는다'며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탓으로 자신의 곁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라지게 했다고 눈물과 자책으로 얼룩진 글을 써서 수많은 여성펜들의 공감을
사기도했고.
법정스님은
- 함부로 인연을 맺지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 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해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고 고통받아야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치는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다.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댓가로 받는 벌이다.- 라며
매우 이지적이고 구도자답게 <스쳐가는 인연은 그냥 보내라>고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無所有論을 수많은 그의 독자들과 불자들에게 들려주고 세상을 떠나셨다
청년시절의 법정스님은 그토록 냉철하게 '좋은인연', '나쁜인연'을 구별할 줄 아는 혜안이 있어서
그토록 단칼에 무 자르듯 출가하여 큰 스님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일이 어찌 그렇기만 하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연에 울고, 인연에 웃는것을.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말은
'인연(因緣)은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더욱이 한번 떠난 인연은 아무리 잡으려고 애써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도 세상을 살면서 숱한 인연을 쌓아 왔었다
한참나이, 서른 조금 넘어 결혼 청첩장을 돌릴때는 인연을 쌓은곳을 초청하려다보니
그 시절에 무려 300여명, 다니던 회사 동료직원만도 근 100여명이 넘었었다
예식장은 나와 인연쌓은 사람만도 400여명 가까이, 버스를 대절한 상대방의 직장동료들까지 합쳐
人山人海를 이뤘었는데 지금은 그 인연들이 모두 떠나가고 말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의 과오로 그 인연들을 멀리 떠나보낸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내 그렇지않다는 것을 알았다
살다보면 자연스레 잊혀지고 퇴색되듯이 인연도 때가 지나면 멀어진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각자 자신들의 삶에 얽메이다보니 자연 관계가 소홀해지고
소홀해지다보니 멀어지고, 그러다보면 인연이 다 하는것 이리라
'이 친구 연락 안한지가 꽤나 오래 되었지.'하고 전화를 하면 부재중이던지,
휴대폰으로 다시 해보면 '바쁘니 다시 연락하자'면서 상대방이 양해를 구하고 끊는다.
얼마후, 다시 또 연락을 하면 또 연결이 안된다.
몇 번 이런식으로 하다보면 나도 심드렁하니 자존심이 발동을한다
아무리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자고 해도 내가 매달릴 사람이 있고 매달려선 체면 구기는 사람이 있잖은가?.
한동안 직장생활을 할때, 많은 직원들을 거느렸었다.
뿐만 아니라 거래업체 사람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다정하게 지내며 소위 인연이란걸 쌓았었다.
직급이 높아지다보니 거느린 직원들은 후배가 아닌, 제자뻘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같은부서 직원들은 나에게 은밀히 면담을 요청해왔다
'이번 학기부터 대학원에 진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주일에 이삼일만 나가면 되니 선처좀 해주십시요."
나는 요령껏 그 직원이 학교에 나갈 수 있도록 선처하여 무사히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후, 그 직원은 졸업을 하고, 졸업후에는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인사를 하고 귀향한후
지방대학부터 강의를 맡아 점차 중앙으로 진출을 하게되고
꽤나 이름을 알만한 대학으로 진출을 하고나면 언제 보았냐는듯 나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다 기회가 생겨 내가 먼저 안부전화를 하면 생면부지처럼 한참만에야 알아보는듯 딴청을 부리기도 했다.
해외에서 만나 친형제처럼 정답게 지냈던 사람도 한국에 돌아오면 살기가 바빠선지 연락을 해달라고
메시지를 남기면 씹어버리기가 일수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혼자 거주할 당시 나는 무척 외로웠었다
단순히 외로워서라기보다 그곳의 정서도 전해줄겸, 한국에 있을때 함께 음악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함께 밤 늦게까지 방송국에서 회의를 하고, 회의가 끝나면 심야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한 방송국 P.D.에게 E-Mail을 몇 차례 써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한번도 답장을 못받았다.
귀국후 왜 답을 안했느냐고 물으니 못 받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수신은 받은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한동안 시간이 흐른후 나는 알게되었다. 그 P.D.는 업무외에는 한 줄의 글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제아무리 불문과 출신의 감성이 풍부한 유명 P.D.도 글 솜씨가 없어서 편지 한 줄 쓰지 못한다는 것을.
극히 사무적인 글도 아니고 우리가 공유했던 음악의 정서를 이야기하며 함께했던 프로를 회상하고
돌아가면 어떤 방향으로 다른 프로를 만들고 싶다는 계획이 담긴 나의 긴 E-Mail에
그는 답을 쓸 용기가 나질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 받았다고 거짓말이나 하지 말았어야지...
본인의 자존심을 앞세워 자신의 감정마저 속이는 가식이 못마땅했다
그런일이 계속되며 한동안 나는 상처를 받은듯 우울했다
나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절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어울리는것을 좋아하고
연배가 많은, 자신이 모셨던 옛상사는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늘 말 실수를 조심해야하고, 술 좌석에서도 함부로 웃고 떠들며 호탕하게 한번 놀 수도 없고
늘 긴장하던 옛버릇을 유지하며 곧곧하게 계속 관계 맺기를 꺼린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러나 이내 '이제는 그와의 인연도 다 했나보다.'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마음속의 친분과 사모도 함께 해야지
혼자서 하는 사모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공허함만 남기며 마음의 병만 만들기 때문이다
인연(因緣).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이며
한번 떠난 인연은 아무리 잡으려 애써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것.
그러나 들어오려는 인연은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어떻게 해서든 만나게 되는것.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