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 Series XXXIII / 해탈 (解脫)
작은 물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꼬
산 내 강을 지나
바다에 이르러
거센 여물에 씻기었구나
번뇌(煩惱)는 어디에서 생겼을꼬
아침 햇살을 맞는
억겁의 물돌에게 묻는다.
- 김문호 시인 -
내 나이 마흔살때 변산반도 채석강엘 갔었다.
바다조수가 밀려오는 해안선을 따라 걸었었다.
조수가 밀려올 때마다 요란스러운 바다소리를 내며
작은 돌들이 굴러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심코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 작고 동글동글한 물돌 틈 사이에서
바다 색을 닮은 보석을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 보석의 정체를 몰랐었다.
그것이 파도와 작은 돌들과 바람과 세월에 씻겨
아주 매끄럽고 예쁜 모습으로 갈리고 닦인 유리 조각이었다는 것을.
어느 상심한 나그네가 찾아와 마시다 던진 술병이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아무것에도 쓸모 없는 유리조각으로 버려진 채 감당해 냈을 절망과 탄식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유리조각이 보석처럼 바뀐 세월의 깊이와 인내 또한.
이제 그 보석- 바다유리는 그 모든 날들을 딛고 다시 아름다운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
에메랄드나 루비, 사파이어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지는 않지만
수많은 물돌들과 함께 몸을 굴리며 동글동글하게 제 스스로 갈고 닦아
가공되지 않은 보석처럼 그리고 본연의 제 색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바다 색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깨진 유리 같은 존재였다.
남을 벨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아니,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남을 베고 상처를 주었으리라.
나의 마흔살 나이는 많은 날들을 버려진 채 절망과 탄식으로 보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파도와 돌과 바람과 세월에 씻겨져 해안선에 머무는
저 매끄럽고 예쁜 바다 유리로 바뀌었으면.
아! 바다유리. 푸르디푸른 바다유리...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