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유감 VIII - 어떤 귀향
추석, 한가위 전날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로 실직을 하거나 폐업들을 한 후, 귀향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한다
정부에서도 3차 발진을 막기위해 고향가기를 그만두고 각자 자신의 집에서 지내며 안부전화로 대신 하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차가 있으니 문 닫고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서라도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자신들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명절이되면 고속도로와 코레일이 만원을 이룬다.
나도 귀향을 하기위해 차를 닦았다.
차를 반들반들하게 닦고나니 앞 유리창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그렇다. 저건 내 인생의 꿈과, 좌절과, 이상과, 현실들이 모여 피어 오르는 것이다.
헉-하며 가슴이 막히는듯 뜨거운 것이 치밀어오른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온 한 평생. 그 속에서 무언가 이루겠다고 잠실벌에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애쓰며 살았다
그러면서 허허벌판이던 곳에 호수가 생겨나고 올림픽이 열리며 흔적만 남았던 토성이 다듬어지고
올림픽이 끝나자 그 자리엔 야외 조각공원이 들어섰다.
그 뿐이 아니라 125층 높은 빌딩이 들어서더니 마침내 강남 삼구로 지정이 되었다.
그리고 턱없는 많은 세금을 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억울하여 구청으로 가서 항의를 하고 공동으로 민원을 넣고
마침내는 머리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광화문 집회에도 몇 번 나갔다.
그러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더욱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죽는날까지 몽촌토성의 해자와 석촌호수를 오가는 해오라기들을 거실에서 글을 쓰며 바라보려했더니
원치도않는 재건축에 걸려버렸다.
봄이면 아름드리 벚꽃들이 길을 이루어 난분분, 난분분 바람에 날리던 곳,
여름이면 125층 쇼핑몰로 달려가 모밀국수로 점심을 먹고 카페로 가서 책을 읽던곳,
가을이면 온통 노란 은행잎으로 깔린 한성백제로를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전거를 달리던 곳,
겨울이면 보드카 한병과 시집을 가지고 몽촌토성으로 가서 눈속에 보드카 한 병을 묻고 시 한 편 읽고 보드카 한 잔,
또 한 편 읽고 보드카 두 잔... 그렇게 취하여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곳.
이제 내가 살던 아파트는 헐리고 빈 터만 남아 몇 년을 이리저리 떠돌며 지내야한다.
다시 돌아간다해도 내가 살던 그 동네는 다시 찾을 수 없으리라.
아직 낯 선 동네에서 차를 닦으며 귀향을 생각해보지만 돌아 갈 곳이 없다.
내가 갈곳은 내가 35년간을 살아온 잠실땅이다.
- Photo /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