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獨白

가을유감 VI - 능소화에 대한 회고

Chris Yoon 2021. 11. 8. 01:28

 

 

 

 

능소화가 여름내 피었다가 뚝뚝 꽃잎을 떨군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이고 옛날에는 양반꽃이라하여 궁궐이나 양반댁에나 심었다한다.

그리하여 양반꽃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양반꽃,... 다른 나무나 벽에 기대며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우는 혼자서는 결코 일어설 수 없는 능소화.

누이동생을 궁궐로 들여보내 누이동생 덕에 권세를 누린 탐관오리와 무엇이 다를까?

나는 능소화를 보면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조부/祖父) 생각이 난다.

내 집안에서는 왕비(王妃)가 여섯명이 나왔다. 이씨조선중 제일 많은 숫자였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T.V. 사극을 보면 파평윤씨(波平尹氏) 성을 가진 왕후들이 권세를 쥐락펴락하며

서릿발같은 호령을 하는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윤씨 남성들은 누이동생 덕에 벼슬을 얻어 누이가 시키는대로 하며 누이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관없고 나약한 남성들로 묘사된다.

나의 할아버지도 사랑채에서 글을 읽으시다 소낙비가 와도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 하나 거둬드리지 못하던

무책임하고 무능한 양반나리셨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의 무능을 대신해 할머니는 많은 소작농을 관리하시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통솔했다.

지금도 나는 할머니의 그 강인한 성품을 기억하며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유순하고 나약한 성품을 닮고 태어난 나는 어린시절부터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며 후천적으로

삶을 영위해나가는 할머니의 경영방식을 배웠다.

 

나는 능소화에 대해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능소화를 볼 적마다 마음의 병을 앓던 때가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위도식하며 할 일 없이 빈둥거릴때였다

'할 일없는데 원고 사진이나 찍어와 봐. 나가는것 봐서 제값쳐서 사 줄테니...'

스튜디오를 하는 친구가 값비싼 카메라를 빌려주며 원고청탁을 해왔다.

 

찌는듯한 8월, 카메라만도 무거운데 각종 렌즈및 자잘한 엑세서리를 챙겨넣고

40Kg이 족히 넘을 카메라 백을 어깨에 메고 나섰다.

강남, 이태원, 명동, 홍대앞, 남대문시장, 동대문상가, 대학로, 인사동, 코엑스 몰, ...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관광지를 찾아 다녔다.

 

장마철의 날씨는 알수가 없다.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촬영을 하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어쩔수없이 근처의 눈에 들어오는 카페로 비를 피해 뛰어 들었다.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한 숨 돌리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1시간여... 비를 피해 들어와 혼자 앉아있는 시간은 무료하기만 했다.

맥주도 마시고, 흡연도 하며 창 밖의 비오는 풍경을 내다봤다.

그때 창 밖 하얀 담벽을 타고 오르는 붉게 핀 능소화가 눈에 확 불을 당기듯 들어왔다.

양반꽃... 옛날에는 양반꽃이라하여 사대부 양반집에서나 심었던 꽃.

능소화를 보려 몰래 심은 평민들은 걸리면 곤장을 맞고 벌금을 톡톡히 물었고.

그러나 이젠 현대를 살며 아무곳에나 뿌리를 내리고 피어 비를 맞는다

 

양반으로 태어났으면 무엇하리. 환쟁이의 기질로 살며 친구의 원고청탁이나 받아

찌는듯한 더위도 아랑곳없이 더위먹은 개처럼 헐떡이며 뛰어다니는 것을.

때 맞춰 들려오는 포르투갈의 노래는 빗소리에 섞여 왜 그리 심난하게 가슴을 울리던지...

그후로도 끊어진 휠름처럼 아주 가끔, 가끔씩 그날의 기억속으로 빠져든다

 

창작도 비애가 없어야하는데 그때의 나는 왜 그토록 자학을 하고 있었나?

처음으로 느꼈던 레디메이드 인생(Ready-made人生)의 고뇌였다

 

 

- Photo / Copy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