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2017. Autumn series XXX. XXXI.

Chris Yoon 2021. 11. 5. 06:27

은사시 나무

 

 

 

서풍앞에서 - 황지우(1952~ )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


두 번의 직유로 간신히 몇 발짝 이어간 단 두 문장.

하지만 이 짧은 중얼거림은 제 실존적 결단의 힘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두려움의 힘으로,

피로 얼룩져 거덜난 시대를 구출하여 역사의 반열에 받들어 올리는 힘을 품고 있다.

오월 광주의 비극을 알리려다 고초를 겪은 시인의 이력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박해받는'에서 '박해받고 싶어하는'에 이르는 인식의 질적 전환에서, 나는 내 몸을 흔들고 가는 전율을 느낀다.

고난 받고 싶다는 뜨거운 자발성에 이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피를 말렸을 것인가.

그의 영혼이 그에게 속삭인다.

'고난을 자청하라. 그것은 한없이 아프되 한없이 달콤할 것이다.'

순결한 것들은 다 아름답게 미친 것들이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야 만다.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야 만다.

<이영광·시인>



Music / The Sound Of Love - Passport to Dream (2018) Single

시 / 황지우 - 서풍 앞에서

시평 / 이영광시인

 

 

 

 

 

가을江

 

 

 

 

강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가을이 오니 그 강은 더 깊고 푸르게 흐른다.

가을은 그렇게 언제부턴가 강을 따라 오고 있었다.

어떤날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어떤날은 서쪽에서 구름을 싣고와

강의 상류를 찾아 역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붉게 물든 나뭇잎 한 장 띄워 바다로 흘려 보낸다.
그 강을 매일 건너다니며 깊은 숨을 몰아쉰다.

아, 가을이 깊다.



- 글 / 윤필립

- 사진 / Chris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