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A Winter esprit - 겨울 집
Chris Yoon
2021. 11. 4. 05:44
저런 까치집같은 둥지에서
너하고 한 달만 살았으면 좋겠다
추우면 서로 몸을 비비며 추위를 녹여주고
너는 내 온몸을 지나 다니며 성감대를 찾아내고
나는 겨울하늘같이 투명한 너를 밤 새 만지리니.
저런 겨울하늘 아래 빈 둥지 하나만 있어도
너와 나, 이렇게 외롭지 않았으리...
사진/글 :: Chris Yoon
지옥같이 벗어나고 싶은 유년시절의 악몽
그것은 아직도 나를 떠나질 않는다
우물이 깊어서 물이 안나오던 동네의 단칸방
아버지의 술주정을 뒤로한체 뛰어나와
시궁창같은 검은물이 흐르는 뚝방길을 걸었다
알수없는 분노로 가슴은 서리발이 서리는데
서쪽하늘의 노을은 마냥 불타오르고 있었다
가위에 눌려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난 아침
아무도 모르게 어린시절 그동네엘 가본다
생선과 채소를 파는 트럭에선 확성기로 반복되는 녹음테입이 돌고
대낮에도 정사를 즐기는 잉여들의 신음소리가
창문 너머로 가늘게 새어나오는 집들
창문 밑에선 개가 홀례를 붙고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빈 집으로 들어가 한 쪽 구석에 앉는다
그래도 햇빛이 들어오고 피아노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온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빈 집 - 윤필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