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이야기 - Nipper Story
Nipper Story
니퍼 이야기 송재학
니퍼라는 흰 강아지, 주인이 즐기는 ‘무도회에의 권유’라는 춤곡을 늘 같이 들었다
주인이 죽고 주인의 부재를 알지못한 채 니퍼는 춤곡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빅터씨가 여윈 니퍼를 초청해서 상표자리에 앉혔다
니퍼는 빅터사의 나팔 축음기 앞에서 그리운 ‘무도회에의 권유’ 를 듣게 되었다
그게 사료가 아니었으니 입으로 킁킁거릴순 없지만 뚱뚱한 주인의 냄새는 분명했다
니퍼는 음악이 끝나길 기다렸다 잠이 쏟아졌지만 곧 등장 할 ‘그의 주인의 목소리’ 가 너무 그리웠던 거다
한 번 만들어진 상표였기에 잡음 섞인 불면은 끝나지않았다
빅터씨가 나에게 1930년대 나팔형 축음기를 팔면서 전해준 니퍼의 감동편이다
다시 빅터씨가 사족을붙였다 이건 실화가 아닙니다 축음기 역시 실화가 아니지만 나는 니퍼가 그리워한 늙은 주인의 냄새와 비슷해 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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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의 詩 <니퍼 이야기>의 배경 설명
주택가 쓰레기통 주위를 배회할법한 품질 안좋은 잡종견 '니퍼'.
볼품없는 모양의 이 잡종견은 신문 잡지 TV의 광고에서도 등장하고 특히 레코드점의 출입문에서는 거의
100% 볼 수 있었다.
JVC 빅터(victor)사의 오디오나 RCA레코드사의 음반 시리즈에서도 예외없이 볼 수 있는 개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많은 사랑을 받는 등록상표.
미국의 유명 레코드사인 RCA사 등록상표의 주인공.
이 사진은 "니퍼"의 유일한 사진이다
과거 골드씰이나 레드씰 시리즈엔 예외없이 이 귀여운 개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가기전이었으니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가족을 버리고 일본으로 가셨던 아버지가 돌아 오셨다.
카라가 넓은 더블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한창 장안에서도 보기 드문 멋쟁이가 되어 돌아오셨다.
그때 그의 손에는 마치 트렁크같은 빅터 유성기가 들려 있었다.
뾰족한 바늘을 수시로 갈아 끼우며 태엽을 감으면서 소위 '유성기 밥을 준다'며 손잡이를 돌리면
노랫 소리가 나는 신기한 기계였다.
그때 들었던 L.P.판의 일본 노래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들... '봄날은 간다', '고향초', '목포의 눈물',...
그런 노래를 들으며 성장한 나는 그때부터 음악의 귀가 트였다고 볼 수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 브리스톨에서 극장 무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마크 바로씨가 어느날 시내를 배회하는
개 한 마리를 만나게된다
볼테리어와 폭스테리어의 잡종견인 이 개는 바로씨를 보자 그의 발뒤꿈치를 살살 깨물고 곰살맞게 애교를
부렸다한다
귀여운짓이 마음에 들었던 바로씨는 이 개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키우기 시작한다
마치 꼬마애가 엄마의 치마자락을 붙들며 졸졸 따라다니듯이 사람들의 발치를 깨물며 졸졸 따라다니는 버릇이
있는것을 알개된 바로씨는 이 개의 이름을 영국속어로 "꼬마둥이"를 뜻하는 의미인 니퍼(Nipper)라 지어준다
하지만 바로씨는 이 개를 입양하고 3년 후 39세의 나이로 급사(急死)한다
동생인 프란시스 바로씨는 형의 장례식이 끝난 후 고인이 귀여워하던 개를 버리지 않고 자신이 입양한다
형과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바로씨는 아틀리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니퍼 역시 마찬가지로 그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된다
프란시스 바로씨는 당시 센세이셔널한 화재를 일으켰던 축음기(에디슨 - 벨사의 실린더형)를 틀며 그림을
그렸다한다
그러던 어느날 잠시 쉬고 있던 바로씨는 축음기의 나팔 앞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앉아있는 니퍼를 보게된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으나 그런 모습을 그 후로도 자주 보게 되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니퍼는 "이 소리가 어디서 나올까.."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기심을 가진것임을 알게된다
귀를 기울이며 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니퍼를 보며 바로씨는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죽은 자신의 형이자 전주인인 마크의 목소리가 축음기를 통해 들릴지도 모르겠다 싶어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
니퍼의 진심을 알 수는 없지만 바로씨는 영감을 받아 축음기 나팔 앞에 귀 기울이는 니퍼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 후 니퍼는 남편의 죽음으로 아들과 함께 쓸쓸히 살아가고 있는 형수(마크바로의 미망인)에게 입양되고
그곳에서 몇 해를 더 살다가 늙어 죽는다
프란시스와 그의 형수, 조카는 비록 주워온 개에 불과할지라도 조그만 행복을 안겨준 죽은 니퍼를 위해
공원 안 뽕나무 아래 묻어주고 조그만 비석도 만들어준다
이 곳은 템즈강 부근 공원에 있으며 아직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개가 죽은 후 프란시스바로씨는 축음기 앞에 귀 기울이며 앉아 있던 니퍼의 그림에 상상력을 가미안 제목인 "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를 붙여 에디슨 - 벨사에 판매를 하려 가지고 갔다하지만 꽉막힌 담당사원은 "개는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며 단박에 거절한다
잡상인 취급을 받은 바로씨는 그림을 가지고 돌아와 집에 걸어놓은 후 어느날 친구에게 퇴짜맞은 얘기를 해준다
친구는 칙칙한 색조의 나팔을 황금빛으로 바꾸는게 좋겠다고 충고를 한다
그럴듯 하다 생각한 바로씨는 그림을 들고 당시 오픈한 축음기- 레코드 회사인 런던의 그라모폰 축음기 회사에
금빛 나팔을 빌리러 간다
금빛 나팔의 용도를 들은 회사 사장 윌리엄 베리 오웬은 "이거 제법 괜찮다"싶어 바로씨에게 그림을 팔겠냐고
묻는다
당근 팔겠다고 하자 오웬사장은 그림에 있는 에디슨 - 벨사의 축음기 대신 자사의 신제품인 디스크형 축음기로
바꿔 그린다면 그라모폰 축음기사의 선전용으로 구입하겠다고 즉석에서 제안한다
가난한 화가인 바로씨는 쾌히 응하고 디스크형 축음기로 바꾼 후 그라모폰사로 가져간다
그라모폰사는 당시로서는 거액인100파운드(50파운드는 그림값, 50파운드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그림과
저작권을 넘겨받는다
지금도 런던에 있는 EMI(그라모폰사의 후신)본사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을 비스듬히 보면 디스크형 축음기 바탕에
본래 그려져 있던 실린더형 축음기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회사는 바로씨의 제목 "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에서 "개와 트럼펫"으로 제목을 바꾼 후
신형 축음기에 적용해 판매하였고 기대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 바로씨와 장기계약을 맺었고 바로씨는 정교한
복사본을 무수히 그리게 된다
1900년 5월 어느날
그라모폰사의 사업 파트너인 독일사업가 에밀베를리너사장은 영국을 방문해 이 그림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 그림에 첫눈에 매료된 그는 영국그라모폰사로부터 판권을 사들인다
그 후 베를리너씨는 미국으로 들어가 자신의 축음기및 레코드회사를 설립하며 등록상표로 이 그림을 쓰고
그 회사의 캐나다 지사인 캐나다그라코폰에서도 이 그림을 쓴다
등록당시 그림의 제목은 "니퍼와 그라모폰"이었으나 별로라 생각했는지 다시 원제목인 "그의 목소리''
(his master's voice)를 쓴다
그 때 베를리너가 창업한 축음기 - 레코드회사가 빅터 토킹머신 회사(victor talking machine co.)로서
오늘날의 RCA Victor회사이다
지금 현재는 소니뮤직과 합병됬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등록된 이 새로운 상표는 니퍼의 등장을 알리는 광고카피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 내용은 <귀여운 강아지 니퍼는 음악을 유난히 사랑하는 주인곁에서 같이 즐겨듣곤 했습니다
주인은 빅터 토킹 머신사의 축음기로 음악을 들었지요
그러다 불행히도 주인이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니퍼는 밤낮으로 슬퍼하며 주인을 그리워했습니다
니퍼는 지금도 주인이 생전에 즐겨듣던 베버의 피아노곡 "무도회의 권유"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면
냉큼 달려가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주인을 그리워합니다
혹시 음악이 끝난 후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가 들려올 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여린 젊은여성들을 눈물짓게 만든 감성적인 문구는 최대의 구매자인 젊은 여성들을
사로 잡았고 결국 에디슨 - 벨사의 축음기를 완전히 시장에서 밀어낸다
아이러니한것은 빅터 토킹 머신사와 영국그라모폰사는 지분을 공유하는 관계였는데
정작 처음 발견한 영국에서는 이 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천사가 깃털펜으로 디스크의 홈을 파는 새로운로고때문 현재 EMI의 GROC시리즈에 아직도 나옴)
그러다가 1909년에 처음으로 영국 그라모폰사에 니퍼그림이 쓰여졌고
이 상표는 빨간색 EMI Classic로고가 사용되기 시작한 1991년 3월까지 유럽에서는 쓰여졌지만
정작 본사에서 발매된 음반에는 천사그림이주로 쓰였다
베를리너가 설립한 독일그라모폰사(오늘날의 도이치그라모폰 약칭 DG)도 처음엔 이 귀여운 개의 그림이
쓰여졌으나 1차대전후 각국 관계가 소원해져 상표권을 빡빡하게 따지기 시작하자 미국RCA를 제외한
다른 회사들은 로고를 바꾸었고 그때문에 당시보단 많이 희석되었지만 현재에도 리마스터링음반에는
이 로고가 계속 쓰여지고있다
한편 his master's voice를 처음 창안한 프란시스바로씨는 1924년 68세로 죽을 때까지 거둬들인 수입이
500만 파운드라고 하니 형에게 물려 받은 개로 인하여 엄청난 부와 명성을 쌓은셈이다
(많은 조사를 거쳐 다듬은 글입니다. 이토록 광고의 역사를 조사해 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 Chris Nicol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