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더냐 XIX - 군자란(君子蘭 / a Kaffir lily)
한 여자는 베란다에 꽃 키우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
스트로폴 상자를 줏어다 상추나 고추모종을 사다 가꾸었다
그리고 그 모종들이 자라면 그 잎과 열매들을 가지고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었다
한 남자는 재활용 분리수거에 나가면 남들이 버린 화분들을보고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깨진 화분 속의 죽어가는 꽃들이 가여워 발걸음을 돌리질 못했다.
수선화나 튜립같은 알뿌리는 아파트화단에 묻어주고
헝클어지고 시들어가는 꽃나무는 집에 들여와 물을주며 정성껏 보살폈다
한 여자는 늘 배가 고팠고
한 남자는 늘 가슴속에 그리움이 있었다
둘은 부부였다
남편은 집을 자주 비우다 돌아가면
아내가 베란다에 가꾼 채소들을 뽑고 꽃을 심었다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화분을 치우고 채소 모종을 사다 가꾸곤 했다
텃밭과 꽃밭의 숨바꼭질,
아내가 남편을 잃고서야 끝이 났다
겨우내 아파트 복도에 들여 놓았던
군자란 화분에서 꽃대가 일곱개나 올라오더니 선홍빛 꽃을 피웠다
25년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던 날,
지인이 사들고온 작은 군자란 화분을
차마 버리고 올 수 없어 차에 싣고 왔던것
우리는 해마다 군자란과 함께 인생의 희노애락을 보냈으며
나와 아내는 어느새 머리가 히끗한 중년으로 바뀌었고
그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들아이는 결혼을하여 집을 나갔다
군자란은 무수한 꽃을 피우며 우리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
밝은 봄빛이 거실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재즈를 틀어놓고 고양이 발걸음처럼 가만가만 발을 떼어놓으며 춤을 추었다.
어느 날,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결정되었다
나는 이주금을 받고 좁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군자란 화분을 친구에게 주었다.
친구는 분갈이를 해주고 정성껏 베란다에서 기르고있다.
그런데 해마다 꽃을 피우며 그 무성하던 군자란이 꽃을 피우질 않는다.
Photo, Copy : Chris Yoon
군자란(君子蘭)
군자란이라는 이름 때문에 난초과 식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난과는 거리가 먼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백합목 수선화과에 속하는 외떡잎식물. 학명은 Clivia miniata Regel이다.
또한 동양권 식물로 생각하지만 원산지는 남아프리카의 나탈이라는 곳의 삼림에 자생하던 귀화식물이다.
우리나라 온실 또는 집안에서도 관상식물로 흔히 심고 있다.
햇빛이 약한 반그늘에서 키워야 주홍색으로 피는 꽃색도 선명하고 잎에 윤기도 흐른다.
물을 좋아하고 추위에 약하며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잘 자란다.
4계절을 거쳐야만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 때문에 춥지 않은 실내에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꽃이 진 후에는 분갈이를 해주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