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이야기
After Snow
Chris Yoon
2021. 11. 1. 05:27
카메라를 메고 다닐 때
나는 천수답이 되는 거였다
빛이 눈처럼 쏟아져도
나의 감광지는
찰나를 한 줌 받아들일 뿐
더 움켜쥐려 할수록 하얘졌다
그 풍경들과 나 사이의 구도에서
없는 걸 꾸며 넣는 게 아니라
허기가 져도
사진의 바깥으로
아쉬움을 덜어내어야만 했다
마침 그때 그곳에 자리 잡았을 따름
돌아와 하루의 여행을 정리하면서
겨우 한두 삽화만 건지고도
그때의 향기와 마음과 차마 이별하지 못해
컴퓨터에 파일을 만들어 몰아넣지 않는가
언젠가 꺼내 볼 요량으로
빛의 진심은 다 보여주는 데 있지않고
한 꺼풀 감추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 어떤 삽화 (눈 내린후의 여행)
영하 17도를 오르내리던 살인적인 한파가 조금 누그러지면서 눈도 그쳤다.
집안에만 틀어박혀있기도 갑갑하여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아! 세상의 그리운 것들이 모두 있었다.
역시 세상은 혹독하고 위험하다고 하지만 모든 보이는 것들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버리고 어찌 나, 이곳을 떠난단 말인가.
- Photo, Copy :: Chris Yoon
- 촬영장소 :: 눈 그친 올림픽 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