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계 - 이덕규
2013. 2. 4.
숙박계 이덕규
늦은 밤 후미진 골목 여인숙 숙박계 막장에 나를 또박또박 적어넣어 본 적이 있으신가?
밤새 오갈 데 없는 어린 눈송이들이 낮은 처마 끝을 맴돌다 뿌우연 창문에 달라붙어 가뭇가뭇 자지러지는
그 어느 외진 구석방에서 캐시밀론 이불을 덮어쓰고 또박또박 유서 쓰듯 일기를 써본 적이 있으신가?
이른 아침 조으는 주인 몰래 숙박계 비고란을 찾아 ‘참 따뜻했네’ 또박또박 적어넣고
덜컹, 문을 열고 나서면 밤새도록 떠돌던 본적지 없는 눈송이들을 막다른 골목 끝으로 몰아가는 쇠바람 속
그 쓸리는 숫눈 위에 가볍게 목숨을 내려놓듯, 첫 발자국을 또박또박 찍으며 걸어가본 적이 있으신가?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지워질 그 가뭇없는 기록들을.... 당신은 또박또박
누구에게나 지난날의 젊은시절은 불에 데인 火印처럼 아프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낯 선 도시를 방황하다가 어느 후미진 골목 여인숙에서 숙박계를 쓰고 잠을자다
불심검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조악한 여인숙 방구석, 머리맡에 술병이 어지럽게 난무하는데
남루한 이불속에서 엎드려 뭔가를 끄적거렸던 젊은날의 치기어렸던 시절.
그때 길 옆으로 난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던 겨울바람과 희미한 가로등 불빛.
지금은 그런 풍경들도 거의 사라졌다
전국이 도시화되면서 모텔로 단장을 하고 여인숙이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은 서울의 종로 3가 뒷골목 풍경이다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지난해,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나왔길래 종로 3가에서 인사동쪽으로 술집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낯 익은 풍경처럼 눈에 들어와서 친구와 쾌재를 부르며 찍었던 사진이다
물론 서있는 사람은 나이고 사진을 찍은 사람은 친구였다
저런 어두운 골목, 절망적인 장소에서 병적인 연출을 하는 사람은 내가 적격이므로...
Chris Nico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