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애송詩

禪 Series 32 / 보리수가 갑자기 - 김광규

Chris Yoon 2021. 10. 11. 04:31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한낮
대웅전 앞뜰에서 삼백 년을 살아온 나무
엄청나게 큰 보리수가 갑자기
움찔한다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어
어디를 건드린 듯

숨겨진 급소가 없다면
벗어나야 할 삶이 있을까

김광규 - '보리수가 갑자기' 전문



대웅전은 부처를 모시는 장소이고
숨겨진 급소가 없다면 벗어나야 할 삶이 우리에게 없을진데...

삼백 년을 살아온 나무처럼 정진하는 수도승의 숨겨진 급소는 무엇일까?

그 큰 보리수 나무를 움찔하게 하는 새는 다름아닌 작은 까치 한 마리.

까치 한마리가 삼백년짜리 큰 보리수에 날아들었더니 나무가 움찔하더란다.

그런것이다.제 아무리 큰 古木이라도 작은 까치 한 마리가 급소를 건드리면 움찔하는 법.

하물며 미미한 인간의 급소를 건드리는데 어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詩를 읽노라니 극적(劇的)인 짧은순간의 실험영화 한편을 본듯하다

사실은 바람이 불어 보리수 나무가 흔들리는데

그때, 때맞춰 까치가 날아들었을 것을 이렇게 극적인 표현을 했다

그런 것을 시간 맞추어 확실히 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