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날 외로워서 산으로 들어갔다
북한산 승가사에서 촬영
나는 왜 또 이 산 속으로 왔나
한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사람들이 보고 싶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고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염불처럼 서러워서 나는 또 하늘을 본다 눈이 내린다
- 김 성 동의 글 중에서-
시장 밑바닥에 굴러다니던 삼돌이란 놈이세상이 시끄럽다고 큰 산을 찾았다
석파(石破) 스님이 된 삼돌이 그러나절간도 소란스럽다고 암자에 나앉았다
하지만 암자의 목탁소리도 번거로워토굴을 파고 그 속에 홀로 묻혔다
토굴의 벽을 맞대고 열두 달은 지났는데도천만 잡념이 꼬리를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러구러 서너 해가 바뀌던 어느 여름날 밤한 마리 모기에 물어뜯긴
석파 문득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제 몸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토굴을 박차고 다시 시중으로 내려와
팔도 잡패들이 득실거리는 시장 바닥에자리를 펴고 앉아 자신을 다스리기로 했다
조약돌을 닦는 것은 고요한 물이 아니라 거센 여물이 아니던 가수십 성상이 지나 석파의 머리도 세어졌다
어느 날 천둥이 그의 머리를 깨고 지나갔는데
세상을 내려다보니모두가 다 부처요, 보살 아님이 없었다
도량 (道場) / 임보
아래 게송은,
양산 통도사 영축총림의 방장이신 원명 노스님이
어느해, 동안거 해제를 맞이하며 수선납자들에게 내리신 말씀이었다.
一切無非佛事 일체무비불사
何須攝念座禪 하수섭념좌선
妄想本來空寂 망상본래공적
不用斷除攀緣 불용단제반연
'일체는 불사가 아님이 없거늘,
어찌하여 마음을 모아 좌선을 하는가...
망상은 본래부터 공적하였거니,
구태여 반연을 끊을려고 하지 말라...'
지난 밤부터 눈이 내렸다.
새롭게 각오도 다질겸 장비를 갖추고 새벽 일찍 산을 찾는다.
한번 들어온 생각은 머리에서 빠져 나가질 않는다.
끝내 버릴 수없고, 지워 버릴 수 없는 생각들은 또 하나의 짐으로 남아 머릿속에서 맴돈다.
눈이 내린다.
지난밤, 눈이 내리는데 밤새 꿈을 꾸었다.
무척 힘들었던 시절이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되돌려져 지난 세월을 반추시키고 있었다.
나날이 허접한 자리로 밀려나는듯 하던 무능하던 40대 시절...
나에게 이슬같이 영롱하던 젊은 시절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과 정신이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듯 흠씬 젖어있었다.
아직도 나는 왜 지난 꿈자리를 배회하며 이토록 힘들어 하나?...
미련과 집착일게다.
그래서 나는 또 이 산 속으로 들어왔다.
젊은날 피 흘리며 투쟁하면서 엑스터시처럼 화려했던 검투사의 삶이
잊혀지질 않아 또 산을 찾는다
* 사진 :: 북한산 승가사 (僧伽寺)를 내려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