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나무 - 이정하
2012. 12. 26.
기다림의 나무 이정하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대는 바람이였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그대 얼굴이 잊혀 갈 때쯤
그대 떠나간 자리에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대를 기다리리
눈이 내리면
늘 빈약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대
잊혀진 추억들이
눈발 속에 흩날려도
아직은 황량한 그곳에 홀로 서서
잠 못 들던 숱한 밤의 노래를 부르리라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어둠 속에
서글펐던 지난날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간
그대는 바람이었네
산책을 나가는 공원 들녁에 외로운 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종류는 향나무인데 언제부터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래된듯하다
소문이 나면서 멀리서부터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패를 지어 몰려와 사진을 찍어간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어찌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며 눈이 머무는 나보다 저 나무를 더 잘 알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거의 삼십년전부터 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하물며 소문을 듣고 단숨에 달려와 강제로 선을 보고 가는 뜨내기 손님들과 어찌 비교를 할까
나무도 아는 사람앞에서만 마음을 연다
사계절에 따라 맑은날,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흐린날... 나무가 달리 보이고
매일 매일 해 넘어가는 방향이 다르고 해 넘어가는 방향에 따라 나무도 다르게 서있다
내가 나무고 나무가 곧 나일세, 이 사람들아.
- Chris Nicolas
이정하 : 1962년생, 대구생 | 호랑이띠 / 학력 :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근래에 이정하 시인의 시를 몇 편 올리고 났더니 무척 좋다는 인사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와 신상에 대해서도 알려고 질문들을 해온다
내가 이정하 시인의 시를 접한건 내 나이 한창인 서른살 후반때였다
그때 묘령의 여인들과 가까이 지내며 밤늦게 카페에 앉아 그의 시를 인용하던 어줍잖던 젊음의 치기.
그래서 그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모두 사들여 독파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그의 사랑타령도 이젠 시들해져 버리면서 나의 청춘도 사그라들었다
순전히 경상도 토박이인 그가 낯선 곳, 익산의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들어간 사연은,
먼저 거기서 자리를 잡은 고등학교 한 해 선배인 안도현 시인의 꼬임(?)과 설득에 힘입어서 였다고한다.
고교 때부터 학업은 전폐하고 문학수업에만 매달렸던 그는 당시 전국에서 열렸던 백일장이나 현상문예에 단골로 입상했던 터였고, 원광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전국 고교 현상문예에 당선되어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기에 굳이 마다할 일도 아니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온 그는 그해 실시하는 경남신문과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동시에 당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순조롭게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몇 권의 책을 내게 되었는데, 운때가 맞았던지 그때부터 그는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처음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우리 사는 동안에』라는 산문집이었다.
1993년, 모방송국에서 구성작가로 일하던 그가 방송 원고를 각색해 낸 책이었는데, 그 책이 100만 부가 넘게 팔리는 초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라는 시집으로 다시금 100만 부를 돌파하는 판매를 기록하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그가 낸 책들마다 족족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시집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산문집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등이 독자들에게 익히 알려진 그의 작품들이다.
문단에 데뷔하고 20년이 지났지만 그의 작품 중 한결같은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지극히 감성적인 언어로 묘사,
때로 작품성보다 너무 흥행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냐는 문단의 질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나름대로 꿋꿋하다. 하기야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는 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마는...
“필기구는 한가지만 있는게 아닙니다. 연필도 있고 볼펜도 있고 만년필도 있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이 있으면 저런 것도 있어야죠. 내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만 그려도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사랑 근처에도 못 갔으며, 평생 헤매고 헤매어도 그 가까이에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여태까지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글에 매료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코 그의 글은 특별하지 않은데. 어쩌면 너무 쉬운 언어로, 누구나 느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뿐이었는데...
그런데 해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특별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더욱 공감하죠. 자신이 겪었음직한, 그리고 자신이 언제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더 공감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다. 어쩌면 그의 이야기가 옳은지도 모른다. 문학의 목적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 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너무 먼 곳에 있는 이야기는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자신이 밟고 서 있는 이 지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라면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사람 하나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도 눈물겨운 일인지.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더 옭아맨다는 사실을.
그런 사랑 이야기로 독자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기에 독자들은 그의 작품들을 반기는지도 모를 일이다.